2011.1.19
미 대륙의 끝, 아열대성의 따뜻한 기후와 대서양과 멕시코만, 카리브해가 만나는 곳인 아름답고 작은 섬 키웨스트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 –1961) 에게 영감을 준 곳!!!
늦은 아침을 먹고 키웨스트에 오면 누구나 한 번즘은 들린다는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찾았다 .
관광객이 많았다. 한국에서 왔다고하니 한글로 된 설명서를 준다. 세상에 한국인들이 어지간히 오나보다 .
거실과 침실, 별채의 서재, 훼밍웨이의 사진들과 기념물 등 생각보다 넓은 정원,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들, 넓은 수영장과 고양이를 위한 분수대, 고양이 무덤들, 침대위에 웅크리고 잠들어있는 고양이도 인상적이다.
♧ 1928년, 작가 John RoderigoDos Passos (1896~1970)는 당시 파리에 살고 있던 헤밍웨이에게 " 키웨스트에 오니 꿈 속을 떠다니는 것 같다" 고 쓴 편지를 보낸다 . 1931년 미국에 돌아와 살고 싶어하던 두번째 아내인 폴린과 함께 키웨스트에 정착한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노인과 바다>등 주옥같은 명작들을 집필하게 되고 <노인과 바다>로 1953년 퓰리처 상, 1954년 소설분야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이 집은 키웨스트에선 처음으로 수도시설이 된 집으로 1851년에 지어졌으니 160년이나 된 집이지만 지금도 저택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헤밍웨이의 소유로 된 것은 1931년으로 헤밍웨이는 이 집을 무척 자랑스러워 했는데 그는 이 곳에서 두번째 부인인 폴린과 이혼하던 해인 1941년까지 살게 된다. 헤밍웨이가 떠난 후엔 가구채 세로 놓았다 헤밍웨이 사망 이후 딕슨 가족의 소유가 되었다가 1968년, 국가유적으로 채택된다.
♧ 1,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군인, 종군 기자, 모험가로 세계 각 곳을 돌고 젊은 나이에 이미 20세기 문학에서는 빼어 놓을 수 없는 소설가로 인정받기 시작해 풀리처상(1953년)과 노벨상(1954년)을 수상하고 자유분방하고 호탕한 성격대로 4번의 사랑과 결혼을 하며 61년의 인생을 가득 채우며 살았던 헤밍웨이. 그러나 스페인 내전에서 입은 부상, 그 후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재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그 때문에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카스트로 혁명으로 쿠바의 재산을 몰수당한 충격과 상실감에 시달리던 헤밍웨이는 삶을 사랑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 자신이 고백했듯 결국 1961년,
" 낡은 기계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는 말을 남기고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훼밍웨이집을 나와 마이애미로 돌아오는 중에 에버그레이즈 국립 공원 Everglades National Park엘 잠시 들렸다. 아들은 들릴 시간이 있다고하고 신랑은 렌트카 돌려주고 공항가서 탑승 수속 밟으려면 시간이 촉박하다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아들을 따랐다. 사실 신랑이 습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있음을 알기에 아들이 우긴것이라는 걸 우리 부부는 잘 알고 있다. 결국은 잘 들린셈이다. 여기저기서 한가롭게 누워있는 악어들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없어 아주 잠깐 돌아보았다. 굉장히 큰 국립공원인데 아쉬운 마음을 접고 부리나케 나와 공항을 향해 가는데 한적한 길(우리나라로는 인적없는 지방 국도쯤?)이라고신랑이 닛산차를 한번 운전해 보겠다고하여 또 아들과 옥신각신. 운전면허가 없는데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라고 절대 안된다는 아들과 무사고 운전 경력 30년이라는 신랑, 결국 이번엔 아들이 양보하여 고속도로전까진 신랑이 운전하엿다. 참 남자들속은 모른다니깐. 마이애미 공항을 ( 7:23PM Delta 2232 비행기)출발하여 뉴욕 JFK공항에 10:20PM 도착하였다. 아들은 내일 회사 출근을 위해 자기 아파트에서 내리고 우린 다시 홀리데이인 호텔에 왔으나 투숙 방 번호를 잘못 알고 730을 1814로 말하는 바람에(왜 잘못 기억되었을까? 730과 1814는 전혀 다른데....) 30여분을 호텔메니져와 옥신각신 끝에 아들과 통화도하고 (호텔예약자가 아들이고 호텔내엔 우리가 방을 예약했고 투숙했었다는 증명이 없으니 우리를 믿을수 없고 전화한걸로만은 믿을수 없다는. ..) 결국 호텔방에 있는 빨강과 파랑의 두 개의 여행가방의 라벨에 있는 이름과 우리의 여권 이름이 같음을 확인한 후에야 입실할 수 있었다.. 다행히 출국할 때 공항에서 여행가방에 영문이름이 있는 라밸을 붙였으니 다행이지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이름이 없었으면 아들이 다시 호텔에 와야했겠지. 겨우겨우 싱갱이끝에 거의 12시에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완벽한 것도 좋지만 너무하잖아!! .그게 마땅한 프로정신이겠지만 조금 융통성도 있었으면 좋았을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탕 샤워 꼭지가 너무 꽉 잠겨 도저히 돌려지지가 않아 서비스룸에 연락해 12시 반경에 사람이 와서 고쳐주고 갔다. 호텔 도착 후의 일련의 사건만 없었으면 오늘은 완벽한 하루였는데.
길옆의 집 마당에 한가로운 닭들
White Head Street 907번지-대문 옆 붉은 벽돌 담장에 Ernest Hemingway Home`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한국관광객을 위한 안내책자
이젠 헤밍웨이 고양이의 후손들 차지가 되어 있는 2층 침실, 아름다운 조각품인 침대의 헤드보드는 스페인 수도원의 문으로 쓰였던 것이었다. 관광객들의 드나듦과 관심없이 느긋하게 잠자고있는 고양이....
침실 수납장 위에 있는 파블로 피카소가 조각한 고양이 조각품의 복제품
별채 2층, 헤밍웨이의 작업실. 그의 물건들이 그가 사용했던 그대로 그 자리에 보존되어 있다.
정원에는 고양이를 위한 분수대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분수대가 놓여 있다.
헤밍웨이가 그의 고양이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바닥에 놓인 사각형의 물통이 바로
" 내가 낸 맥주 값이면 충분히 들고 갈만 하다" 며 슬라피 조스 식당 화장실에서 떼어 온 남성용 소변기다.
넓은 정원에는
온갖 나무와 꽃들로 식물원같은 정원
본채이층에서 별채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음
길이 20m로 키웨스트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현재까지도 키웨스트에서 가장 큰 개인 수영장이다. 당시 헤밍웨이의 집 값이 $8,000이었는데 스페인 내전에서 돌아온 후 $20,000 수영장 건축비 명세서를 보고 놀란 헤밍웨이는 아내인 폴린에게 내 마지막 1센트까지 가져가라며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1센트를 던져 주었다고 한다.
.
밤에 등대불을 보고 집으로 왔다는 그 등대가 보이네
이런 풍광을 끼고 계속 달리는데 아들은 지루하다하고 우리 부부는 멋지다고하여 세대차를 ......
운행도중 마침 우리 앞에서 다리가 올라가서 찰각
가마우치? 가
마침 거북이가 알을 낳고 있었다
이렇게 느긋하고 자고있는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신기하고 무서웠는데....
에버그레이즈 국립 공원 Everglades National Park 1993년 UNESCO에서 지정한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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